전설이 돌아왔습니다.

왕년의 MBC 명 아나운서 임택근씨의 아들, 손지창의 이복 형.

복잡한 가정사 만큼이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 그.


김종서(보컬)-서태지(베이스)가 동경해마지 않던 전설의 그룹 '시나위' 직속 선배.

천재 신대철(기타, 신중현씨 아들)이 알아본 또 하나의 천재이자, 그를 긴장시킨 유일한 보컬리스트.

모두가 그토록 보길 원해왔지만, 결코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그.


윤도현이 '비주류'라고 죽는 소리를 해대지만,

우리나라에도 락/메탈의 전성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시나위-백두산-부활의 삼중주가 어우러지며, 장르 전체를 전면에서 이끌고 가던 80년대.


종로 파고다 극장(당시 언더 밴드들의 공연장)에 신대철을 보러 갔던 저는,

보컬이던 김종서와 앳된 모습으로 베이스를 치던 서태지를 보게 됐습니다.

당시 김종서는 특이한 목소리의 보컬로 그나마 조금 알려지던 시기였지만,

서태지는 뭐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베이스라는 악기에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요.)


공연 중반쯤 한 건장한 남자 게스트가 올라오더니, 관객 모두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렸습니다.

그런 목소리는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고,

우리나라에 이런 목소리와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

그가 바로 락의 전설 '임재범'이었습니다. (시나위 전임 보컬 자격으로 게스트 공연한 것이었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솔로로 데뷔했습니다.

'이 밤이 지나면', '고해', '사랑보다 깊은 상처' 그리고 '너를 위해' 등,

정말 주옥같은 명곡들을 발표했죠.

그는 단 한번도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적은 없습니다.


처음 솔로 데뷔했을때 몇번 TV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자신을 천성적으로 TV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그였기에 곧 TV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TV 출연이 가요 순위 프로그램 순위 선정의 중요한 척도가 되던 시절,

그의 노래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거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의 명곡들은 지금도 1위일 겁니다.


그가 이날 그의 최고의 라이브를 보여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도 긴장하더군요, 왜 아니겠습니까?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그의 지난 인생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 노래 가사와,

가슴 깊은 곳을 묵직하게 건드리는 그의 목소리의 무거운 울림이,

관객과 시청자들의 마음에 결코 잊혀지지 않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카메라에 잡힌 몇몇분외에도 적지 않은 관객평가단 분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관객평가단은 그를 심사-평가할 마음이 없는듯 그저 그의 노래에 빠져들기만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대체 누가 전설을 평가하겠습니까?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았던 거겠죠.


어느새 그의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의 이런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겠군요.

"펑크 내지 않겠습니다."라고 방송 말미에 그가 다짐했으니,

당분간만이라도, '나가수'에서 만이라도 그의 무대가 계속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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