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이면 머리에 까만 귀마개를 하고 구멍난 학원창문으로 한참을 살피다가 빼꼼이 들어오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항상 주머니에는 이상하고 신기한 완구제품이 가득 들어있고 손에는 달마다 바뀌는 만화책이 들려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까만 귀마개를 하고 빨갛게 상기된 볼을 비비며 들어와서는 갑자기 연필로 무엇인가를 그리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조는 듯한 눈썹을 내리고 두팔은 턱에 고인 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소녀가 있는 그림이었다. 원래 5학년 여학생이 방학과제물로 만들어 놓은 달력에 그려 넣은 그림으로 그 여학생은 교내외 미술대회에서 자주 상을 타던 학생이었다. 아마도 1학년 초등학생이지만 그 누나보다 잘 그리고 싶어서였을까? 어쨌든 모작이지만 막 빗질해서 빗어내린듯한 머리카락과 탐스러운 머리핀, 그리고 몇 번을 지운 듯한 팔과 아기발바닥처럼 펼쳐진 손바닥의 표현에서 그 아이만의 천진스러움과 솔직함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그 아이를 닮은 듯한 오른쪽 화병의 꽃송이와 꿈꾸는 듯한 소녀의 표정이 매우 잘 어우러져 있음도 특징적이다. 이렇듯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리저리 신기하게 구도도 잘 맞고 그림전체의 분위기도 조화로운 것이 개구쟁이 그 아이가 마치 요술쟁이 같기만 하다.

그림 1

그림 2

미술감상 수업을 하였다. 근.현대 작가들의 명화를 보여주고 난 뒤 특별히 생각나는 점이 있으면 글로 표현하거나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였다. 그 중에서 발췌해 놓은 작품들로 (그림 1)는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르느와르의 조로를 든 소녀'를 그린 것이고, (그림 2)는 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모딜리아니의 노랑 스웨터를 입은 쟌느'를 표현해 낸 것이다. (그림 1)은 원작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흡사하다. 곱슬곱슬한 머리 위에 있는 리본이나 단추와 레이스가 달린 옷과 역시 레이스가 달린 신발, 서로 방향은 바뀌었지만 조로를 들고 있는 모습의 표현이 매우 재미있다. (그림 2)는 원작과 흡사하진 않지만 아이의 눈에 비친 이상야릇한 모딜리아니 작품의 특징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약간 갸우뚱한 얼굴각도와 긴 목, 거침없이 단숨에 그려낸 팔과 몸의 선에서 아이의 직설적인 표현감도 읽을 수 있으며, 팽글팽글 돌아가는 눈동자와 긴 코밑의 작은 입술은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준다. 아이들의 작품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그리고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그 돌발적인 표현 앞에서 항상 머뭇거리는 듯한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