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와서 미국 미술은 유럽의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는 데 열심이기는 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늦었다. 특히 2차대전 초의 미국 화단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지방주의가 지배적인 형식이었다. 전쟁의 치열함이 화가나 미술 저널리즘으로 하여금 현실 참여 의식을 고취시키도록 만들었고, 당연한 귀결로서 전쟁의 기록적인 면을 강조한 미술작품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쟁의 덕택으로 추상적이거나 표현주의적인 경향의 미술은 새로운 계기를 맞이했다. 전쟁을 피해서 도미한 유럽의 전위작가들이 미국 미술에 큰 자극과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마르셀 뒤샹, 모흘리 나기, 조셉 앨버스, 한스 호프만, 몬드리안, 자크 리프시쯔, 나움 가보, 샤갈,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달리, 마타, 앙드레 마송, 브르통 등이 그 중요한 작가들이었다. 한편 현대미술의 파트롱이며 컬렉터였던 페기 구겐하임도 도미하여「금세기 예술(Art of This Century)」이란 화랑을 경영하였는데, 이곳은 미국 전위미술의 중요한 산실이 되었다. 여기에서 유럽의 작가들과 미국의 젊은 미술지망생들 사이에 접촉이 이루어졌고, 이후 미국 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3년에서 1946년의 기간 동안에 잭슨 폴록, 한스 호프만, 로버트 머더웰, 마크 로드코, 클리포드 스틸 등의 개인전이 화랑에서 계속해서 열렸다.

추상표현주의는 회화에 있어서 무의식성을 강조한 쉬르레알리슴의 오토마티슴에서 특히 강한 암시를 받았다. 추상표현주의들, 특히 폴록의 경우 이런 오토마티슴의 강조는, 전면 균질적(全面均質的)인 공간 구성, 드립 기법의 개발, 또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둔 액션(제스처)적인 제작 태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추상표현주의는 이 점에서 추상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 즉 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 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는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기하학적·무기적·차가운 추상), 부정형(비기하학적·유기적·뜨거운 추상)한 점(點)이나 선, 또는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形象-figure)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 형상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서, 그 때문에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시 그라운드(ground-後景)와 피겨(figure-前景)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오토마티슴에 힘입어 이러한 형상성을 초월하고자 했다. 무의식이란 오히려 자연에 가까운 형상 속에서 제작함으로써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가진 형상을 거부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오토마티슴을 거의 무시하고 형상을 비롯, 포멀한 측면을 지니는 추상이란 구상예술의 연장 내지는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